6년전, 뇌병변을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긴장이 풀려서인지. 그 동안에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이 없어 건간에 소홀했던 탓인지
자주 피곤해지고 생활 의욕도 떨어졌다.
소변 배출이 원활하지 못해 밤잠을 설치다보니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비뇨기과를 방문했다.
담당의 소견으로는 방광기능 저하로 체내 잔류하는 소변이 염증수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긴급 처방으로 인공 잔뇨 배출장치를 달고 생활하기를 권했다. 믿기지 않는 충격적인 처방이었다.
그런 이유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안도 심해지고 손가락 관절염으로 부기가 지속되고
통증으로 손가락에 힘을 쓸 수 없게 되었다.
대학에서 코딩 실습을 주로 강의하던 나로서는 여러모로 사회 생활에 적신호가 온 것이다.
첫 발병 때는 강한 항생제 치료로 위기를 넘겼으나 이듬해 또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당분간 강의하던 일을 그만두고 휴식에 들어갔다.
때마침 코로나가 유행하여 사람 만날 일이 줄어 다행이었으나
기약없는 휴식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처음 깨달았다.
집 가까운 아파트상가를 얻어 배달음식사업을 시작했으나
배뇨장애와 극심한 체력저하로 또다시 병원을 찾았고, 신장에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진단으로
다시 위기를 맞이했다.
쉬엄 쉬엄 큰 욕심없이 코로나 특수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사업이 3개월만에 정리하게 된 것이다
다행이 악성 종양이 아니라 약물 치료를 하며 상태를 지켜보기로하고 다시 휴식시간을 갖기로 했다.




노는 일도 늘 놀던 놈이 잘 한다고, 몸이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었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다시 창작활동을 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작업실을 구해 혼자서 뭔가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치 홀린 듯이 작업공간을 계약했다.
경산역 주변 허름한 옛날 건물 2층.
화실로 쓰기에 딱 적당한 위치에 스무평의 소박한 공간이 마련되었다.
곳곳에 거미줄과 누더기 같이 방치된 옛날 사무실의 칙칙함이
오히려 내게는 퍽이나 낭만스러운 공간으로 느껴졌다.
2021년 6월. 더위가 시작되는 계절에 다행이도 쓰다버린 낡은 에어컨이 한쪽 구석에 설치되어 있어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벽에 세워놓은 문짝 하나도 고맙게 느껴졌다.
낡은 바닥에는 수십년 누러붙은 때꾹물 자국이 재생 불가능할 정도로 불편해 보였다.
그게 뭐 대수인가?
나는 여기서 내가 하고싶었던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겠다는 기쁨만이 충만할 뿐이었다.






집에 있던 잡동사와 허술한 가정용 공구지만 여기에 모두 실어왔다.
약 한 달에 걸쳐 돈 들이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청소하고 리모델링에 들어갔다.
꽤제제한 바닥은 5일간 닦아도 닦아도 별 성과가 없었지만 그럭저럭 쓸만하게는 만들었다.
인테리어에 아무런 지식없이도 이런 저런 장비들을 구입하고 직접 손으로 벽을 세워 창고도 만들고
칠하고나니 나름 흐뭇한 새로운 공간이 탄생했다.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이 때 까지만 해도 정말 1 도 없었다.
너무 오래 떠나있었기도 했지만 컴퓨터 공학으로 전공을 옮겨오면서 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좌뇌형
인간이 되어버린 내가 예술적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시작 된 것은 이 공간을 만들고 부터 시작 된 것 같다
놀면 뭐하나? 여기서 그림이나 그리지 라는 심산도 있었고
산이 내 앞에 있으니 나는 산에 오른다는 어떤 시인의 말처럼 환경이 사람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보다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내가 좋아하던 선배 작가와 이 공간에서 함께 1년간 생활하던 중
그 분의 권유로 이듬해 10월에 생각지도 못했던 개인전을 열면서부터였다.